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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엄마의 말 - 다시는 오지 말거라

📑 목차

     

    [자전적 소설] - 8회: 천호동 가는 길 - 친엄마를 찾아서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9회: 엄마의 말 - 다시는 오지 말거라

    문 앞에서 숨을 골랐다. 두 번, 세 번. 노크를 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문이 열렸다. 엄마가 서 있었다. 냄새로, 눈빛의 모양으로, 웃을 때 입꼬리의 각도로 나는 알아봤다. 그러나 그 얼굴엔 오래된 어색함이 먼저 떠올랐다.
    "들어오너라."
    그 말의 온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밥이 나왔다.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식도가 놀라 몇 번이고 기침을 뱉었다. 물을 마셨다. 물이 배로 떨어질 때, 내 귀에만 들리는 작고 깊은 소리가 났다. 엄마는 조용했다. 나는 그 조용함을 밥그릇 속으로 밀어 넣듯 숟가락질을 계속했다. 밥알 몇 개가 그릇 벽을 타고 내려가며 반짝였다. 아주 잠깐, 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밥을 다 먹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골목엔 오후의 빛이 묽었다. 뒤집힌 양철 대야, 담벼락에 기대 선 자전거,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 엄마가 말했다.

     

    다시는 오지 말거라—문 앞의 이별 (수채화·연출)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말거라."
    문장은 간단했고, 칼날 같았다. 나는 "왜요"도 "알겠어요"도 하지 못했다. 먼지가 바닥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가 허물어졌다. 엄마의 손은 허공에서 잠깐 망설였고,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채 내려왔다. 그 손은 내 기억 속에서 늘 따뜻했는데, 그날은 온도가 없었다.


    나는 다시 길로 나왔다. 되돌아갈 지도를 몰랐다. 그래서 이번엔 "종로"라는 글자를 찾아 올려다봤다. 버스가 지나가면 그 방향으로 걸었다. 갈림길에서는 멈춰 서서 또 글자를 기다렸다. 글자, 방향, 발걸음. 돌아가는 법이라기보다, 사라지는 법에 가까웠다.
    집에 닿기 전, 나는 한 번 더 하늘을 봤다. 전깃줄 사이로 잘린 작은 별들이 몇 개. 별들은 조용했다. 조용한 것들이 오래 남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를 더듬었다.


    "엄마."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 한 글자의 온도가 가슴 한쪽을 오래 데웠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걸었다. 다음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발이 먼저 나를 데려갈 곳을 찾도록.
    1970년대 초, 국민학교 1학년과 3학년 사이. 낮엔 나는 또렷하게 아이였고, 해가 기울면 갑자기 어른처럼 숨죽여야 했다. 골목 끝에서 집 쪽을 바라보면, 발이 먼저 멈췄다. 문틈 너머의 눈치를 미리 떠보느라.
    낮의 나는 바깥에 있었다. 흙먼지가 얇게 뜬 운동장, 손바닥이 달아오를 때까지 내리치던 딱지, 구슬을 튕길 때 손끝에 전해지는 유리의 차가움. 비 온 뒤엔 웅덩이가 거울처럼 퍼졌고, 고무신은 물살을 가르며 첨벙거렸다. 우리는 소리 내 웃었고, 웃음은 쉽게 커졌다. 저녁이 가까워오면 내 웃음은 작아졌고, 걸음은 느려졌다

     

    다음 회차 예고|〈10화: 파란 우산의 추억〉
    비 오는 날, 가게 앞의 파란 우산들.
    나는 왜 한 자루도 팔지 못했는데 미소를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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