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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천호동 가는 길 - 친엄마를 찾아서

📑 목차

    [자전적 소설] - 7회: 도둑질을 시킨 어른 - 사기그릇 사건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8회: 천호동 가는 길 - 친엄마를 찾아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친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건 많지 않았다. 냄새 한 줌, 손의 온도, 웃을 때 입꼬리의 모양 같은 것들. 그 기억들이 골목의 바람처럼 어느 날 불쑥 내 곁을 스쳐 갔다. 그 바람이 지나가자, 나는 알았다. 내가 도망친 건 집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던 자리, 그 자리로부터도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결석이 습관이 되어가던 때였다. 육성회비

     봉투가 돌던 월초마다 나는 담벼락에 붙어 종소리만 세

    었고, 집에 들어가면 계모의 손이 먼저였다. 맞으면 다시 도망쳤고, 도망치면 더 세게 맞았다. 그런 날들이 한 벌의 옷처럼 몸에 달라붙던 어느 오후, 나는 마음속에서 오래 부스럭거리던 한 문장을 꺼냈다.

    벽돌 골목 끝의 버스와 한 줄의 그림자 (수채화·연출)


    천호동으로 가자. 친엄마를 찾아가자.
    돈은 없었다. 버스요금은 꿈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만들었다. "천호동"이라고 적힌 버스를 따라 걷는 것. 큰길 모퉁이에서 행선판을 읽고, 버스가 꺾어 간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갈림길에선 멈춰 서서 또 "천호동"을 기다렸다. 글자, 방향, 발걸음. 아이가 가진 지도는 그뿐이었다.
    아스팔트의 열기가 무릎 뒤를 때렸다. 분식집의 고춧기름 냄새와 구두수선 가게 본드 냄새가 번갈아 치고 빠졌다. 슬리퍼 끈이 땀에 젖어 까슬거렸고, 발바닥은 뜨거움과 아릿함을 번갈아 보였다.
    "저 버스, 천호동 가요?"


    지나가던 어른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 그 끄덕임 하나로 또 몇 정거장 거리를 걸었다. 도시의 글자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바람의 냄새가 달라졌다. 길 끝 어딘가, 강 쪽의 기운이 얇게 스며들었다.
    천호동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쯤, 배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시장거리로 들어갔다. 천막이 하늘을 좁혔고, 물을 뿌린 바닥은 시커멓게 반짝였다. 생선 비늘이 햇빛을 잘게 부수고, 참기름집 절구가 둔탁한 리듬을 찍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 아세요? 엄마를 찾으러 왔어요."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셋째는 귀찮은 얼굴이었다. 넷째는 묻지도 듣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흘. 밤이면 셔터와 비닐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잤다. 비닐의 미끈한 냄새, 박스의 마른 냄새, 남은 튀김기름의 눅진함이 뒤섞여 코를 눌렀다. 새벽이면 물 뿌리는 소리와 빗자루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먼저 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다시 물었다. "○○○를 아세요?"
    기적처럼 한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생선 칼을 닦던 상인이 손가락으로 골목 끝을 가리켰다.
    "저기, 가게 위."
    말은 짧았고, 방향은 분명했다. 다리가 먼저 알아듣고 움직였다.

    9화)에서 밝혀집니다.

    그날 문밖에서 들은 한 문장이 내 지도를 바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