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자전적 소설] - 6회: 도망과 화상 - 연탄집게의 기억
7회: 도둑질을 시킨 어른 - 사기그릇 사건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얼마 뒤, 계모는 사촌형을 불렀다. 나보다 열 살쯤 많은, 기름이 배어 번들거리는 점퍼, 뒷굽이 닳은 구두, 손등의 굳은살. 그는 문턱을 넘으며 계모의 말을 들었다.
"가출질 한다. 버릇을 고쳐."
그는 내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가볍게 들렸다. 세상이 뒤집혔고, 천장이 바닥보다 가깝게 다가왔다. 머리가 바닥에 찍히는 순간, 내 입에서 동시에 두 문장이 튀어나왔다.
"하지 마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소리는 얇았다. 울음과 부탁 사이 어딘가. 머릿속에 별이 터졌다. 별은 고요했다. 고요 속에서 계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형은 내 어깨를 툭 털었다. 그의 손바닥 냄새는 담배와 기름과 약간의 달큰한 향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나를 내려놓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담배를 찾았다. 라이터의 불꽃이 순간 방 안의 공기를 밝히고, 곧바로 어두워졌다.
또 한 번은, 계모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골목을 두 번 꺾고, 대문이 높은 집 앞에 멈췄다. 마당 안, 햇빛을 받은 큰 광주리 안에 그릇들이 포개져 있었다. 사기그릇의 흰 면에 하늘이 얕게 비쳤다.
"저기서 하나 가져와."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계모는 한 번 더 말했다. "저거 하나 훔쳐와." 그리고 뒤도 보지 않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 나만 남았다. 대문 밖은 조용했다. 참기름집에서 바람을 탄 고소한 냄새가 흘러왔다. 이웃집 개가 하품을 했다. 사람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광주리를 오래 바라봤다. 그러다 몸을 낮춰 마당으로 스며들었다. 그릇들의 가장자리끼리 부딪혀 '딸깍' 하고 아주 얕은 소리를 냈다. 심장이 그 소리를 따라 뛰었다. 손이 그릇을 감싸 쥐는 순간, 손바닥에 사기의 차가움이 기분 나쁘게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그릇을 품에 안아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계모는 나를 힐끗 보고 말했다.
"거기 내려놔."
끝이었다. 꾸중도 칭찬도 없었다. 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한 발 물러섰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들키기를 바라진 않았을까.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우고, "너 왜 그러고 사니"라고 묻기를. 나쁜 짓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 도둑질을 시킨 어른이 있다는 걸 누군가 봐 주기를.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 수 없었지만, 어렴풋한 바람으로는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기를.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기를.
그 뒤로도 결석은 늘었다.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이끼의 촉감, 분식집 연기, 철길의 떨림, 낮의 먼지. 나는 그들 사이에서 종일 시간을 깎아 먹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 집에 돌아가면, 계모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손이 먼저였고, 발이 먼저였다. 그러면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8회)다음 이야기의 질문:
천호동이라는 두 글자를 따라가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엄마의 흔적은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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