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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도망과 화상 - 연탄집게의 기억

📑 목차

    [자전적 소설] - 5회: 담벼락 밖의 아이 - 결석의 날들

     

    5회: 담벼락 밖의 아이 - 결석의 날들

    5회: 담벼락 밖의 아이 - 결석의 날들 육성회비를 걷는 날이면, 나는 교문을 지나지 않았다. 학교 담벼락이 한쪽 볼을 내주는 곳에 서서, 책가방을 등 뒤로 돌려 숨긴 채 종소리를 세었다. 첫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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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도망과 화상 - 연탄집게의 기억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970년대 초, 나는 학교를 빠지는 법부터 배웠다. 처음엔 하루였다. 육성회비를 걷는 날, 교문 앞에서 발이 멈췄다. 둘째 날엔 담벼락의 그림자를 따라 걸었고, 셋째 날엔 종소리를 등 뒤에서 세었다. 결석은 그렇게 '한 번'에서 '자주'로 바뀌었다. 낮의 빛은 얇았고, 나는 더 얇아졌다. 계모가 무서웠다. 무서움은 몸을 집 밖으로 밀어냈다. 집에 들어가는 대신, 동네의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아 몸을 접었다.

    담벼락 밖에서 낮을 버티던 아이(수채화·연출)


    나는 동사무소 뒤 공터의 시멘트 턱을 베개 삼아 쭈그려 잔 적이 있다. 공중화장실 문짝은 밤마다 바람에 스스로 열렸다 닫혔다. 연탄가스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 요 깔개의 눅진한 비누 냄새가 뒤섞여 코에 들러붙었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고 나면, 도시의 큰 소리는 멎고, 사소한 소리들이 살아났다. 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를 찢는 소리, 멀리서 전차가 레일을 긁는 소리, 초등학교 깃발이 깡마른 바람에 긁히는 소리.


    결석을 거듭할수록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더 길어졌다. 길이 길어질수록, 돌아가서는 더 세게 맞았다. 그리고 더 세게 맞을수록, 다시 집을 떠났다. 날들이 그런 식으로 말리듯 반복됐다. 계모가 눈앞에 있든 없든, 손바닥의 열감과 욕설의 높낮이가 항상 먼저 떠올랐다. 몸은 그 기억을 피하려고 길을 찾았고, 길은 항상 집 바깥으로 이어졌다.
    한 번은, 도망 다닌다는 소문이 계모의 귀에 정확히 꽂힌 밤이었다. 문이 잠겼다. 방 안 공기는 낮의 잔열과 술 냄새로 끈적거렸다. 연탄난로의 화구가 벌겋게 숨을 쉬고 있었다. 계모는 연탄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 쇠의 이빨은 늘 연탄을 물던 자리라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계모는 집게 끝을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아주 짧은 기다림.
    집게가 빠져나왔을 때, 쇠 끝은 불꽃이 보이지 않아도 빛을 내고 있었다. 공기가 데워진다는 게 이런 냄새였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쇠에서 나는 뜨거운 금속 냄새, 연탄의 매캐함, 닳은 비닐장판의 타는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가출질을 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뜨거움이 내 왼쪽 발등을 덮쳤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살에 열이 박혔다. 번쩍. 눈앞이 하얗게 뒤집혔다. 통증은 소리였다. 멀리서 기관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길게 밀려왔다가, 다시 발등에 집결했다. 나는 비명 대신 숨을 들이마셨다. 입안에서 철 맛이 올라왔다. 계모는 집게를 내려두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 무덤덤함이 더 뜨거웠다.
    그날 밤의 냄새는 오래 남았다. 연탄재와 살 냄새가 섞인 기묘한 쇳내. 지금도 가끔 빗물에 젖은 시멘트 냄새를 맡으면, 그 소리가 다시 난다. '치익.' 그리고 발등이 다시 뜨거워진다. 몸은 과거를 현재형으로 기억한다.

    7회)묻습니다.
    도둑질을 시킨 어른은 어디까지 책임이고,
    그 일을 한 아이의 마음은 어디서부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