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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연필 하나의 무게 - 초등학교 1학년

📑 목차

    4회: 연필 하나의 무게 - 초등학교 1학년

    [자전적 소설] - 3회: 여동생의 실종 - 지워진 얼굴

     

    3회: 여동생의 실종 - 지워진 얼굴

    [자전적 소설] - 방 한 칸의 밤 - 1960년대 후반 2회:방 한 칸의 밤 - 1960년대 후반2회: 방 한 칸의 밤 - 1960년대 후반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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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970년대 초, 초등학교 1학년 봄 아침이었다. 교문 쪽에서 종소리가 한 번 울리고, 운동장 모래가 얇게 떠올랐다. 나는 그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길을 되돌아갔다. 연필을 빼먹었다. 교과서 사이에 있어야 할 가느다란 막대가 없다는 사실이, 배 속을 쿡 찌르는 송곳처럼 느껴졌다. 골목의 하수구에서는 밤새 식지 않은 연탄 내와 비린 물 내음이 섞여 올라왔다. 세탁대 위 고무대야에선 회색빛 거품이 바람에 끌려 흔들렸다.

    “연필을 빼먹은 아침, 문턱의 망설임.”



    문을 미는 순간, 실내의 공기가 바뀌었다. 눅눅함과 기름 냄새, 부엌 벽에서 벗겨진 신문지의 풀내가 뒤섞인 공기. 누나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배다른 누나, 나보다 한참, 열 살, 아니면 열한 살 위. 커다란 고무머리핀으로 머리를 넘기고, 소매 끝을 말아 팔뚝을 드러낸 채 빨래를 헹구다 말고 나를 돌아봤다. 그 표정은 내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누나, 연필 빼먹었어. 연필 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에서 번쩍하는 불꽃이 터졌다. 눈앞이 흰색으로 뒤집히고, 실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귓속에서 길게 울었다. 계모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숨 냄새는 술 같았고, 눈동자는 얇았다.
    "그걸 왜 누나한테 찾아? 나한테 얘기해야지!"


    소리가 칼날처럼 얼굴을 지나갔다. 한 번 더 손이 날아올 줄 알아서,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나는 울지 못했다. 울음은 입천장 뒤에 얼음처럼 붙어 있었다. 손끝은 힘이 빠져 무릎 위에 흘러내려갔고, 뺨에서는 금속 맛이 어렴풋이 올라왔다. 누나는 말했다. "그만해요…" 그러나 그 말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힘을 잃었다. 방 안에는 잠깐 비가 내린 뒤처럼 적막이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길을 걸을 때도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귀는 주변의 숨소리를 먼저 듣고, 눈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먼저 읽었다. 나의 '먼저'가 바뀌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마음이 먼저였다.


    3학년 무렵, 학교엔 월초마다 봉투가 돌았다. '육성회비'라는 글자가 파란 잉크로 찍힌 종이봉투. 칠판 옆엔 분필가루가 무겁게 내려앉았고, 선생님은 출석부를 넘기며 물었다.
    "육성회비 안 낸 사람, 손."
    그 문장의 끝에는 늘 내 이름이 있었다. 몇 번 불려 나간 뒤에야, 집에서 돈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그건 번번이 늦었다. 내 책상 속 봉투는 자꾸만 빈 채로 남았다. 친구들의 발뒤꿈치가 교실 바닥을 박박 긁고 지나갈 때, 나는 내 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몸집이 작아지면 이름도 작아질까 싶어.

     

    [자전적 소설] - 3회: 여동생의 실종 - 지워진 얼굴

     

    다음 회차 예고|〈5화: 담벼락 밖의 아이〉
    나는 왜 담을 등지고 종을 세었나?
    결석의 날들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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