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자전적 소설] - 9회: 엄마의 말 - 다시는 오지 말거라
9회: 엄마의 말 - 다시는 오지 말거라
[자전적 소설] - 8회: 천호동 가는 길 - 친엄마를 찾아서 9회: 엄마의 말 - 다시는 오지 말거라 문 앞에서 숨을 골랐다. 두 번, 세 번. 노크를 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문이 열렸다. 엄마가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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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0회: 파란 우산의 추억 - 팔지 못한 우산
동네에는 만화책을 빌려주고 과자와 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비가 오면 가게 앞에 파란 비닐우산이 줄 맞춰 섰다. 젖은 플라스틱 냄새와 버터 크림 냄새가 섞여 골목으로 흘렀다. 어느 장대비 내리던 날, 사장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산 팔래? 한 자루 팔면 얼마씩 줄게."

아이들은 환호했다. 파란 우산 다발이 어깨마다 걸렸다. 누군가는 "우산이요, 우산이요!"를 높게 외쳤고, 누군가는 사람에게 바짝 다가가 "하나만 사주세요" 하고 사정했다.
나는 우산을 한 자루 들고 서 있었다. 입이 먼저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작은 소리로 한 번, 두 번 따라 해 봤다. "우산…요." 내 말은 빗소리에 금세 젖어 사라졌다. 다른 아이들의 외침은 멀리까지 갔고, 내 소리는 배 속에서만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 손에 들린 우산이 하나둘 줄었다. 둘, 셋, 많은 아이는 여섯, 일곱 자루까지 팔았다. 내 손의 우산은 처음 그대로였다. 비는 우산 비닐 위로 점을 찍었고, 손잡이는 점점 미끄러워졌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빗줄기 속에서 파란 비닐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내 차례의 반짝임 같은 기분도 들었다.
가게 앞으로 다시 모였을 때, 사장 아저씨는 팔아온 자루 수대로 아이들 손바닥에 동전을 툭툭 얹어 주었다. 동전이 손금 사이로 차갑게 굴렀다. 아이들은 그 돈으로 과자를 샀다. 슈크림 냄새가 코를 찌르고, 종이봉투 안에서 설탕 가루가 바람에 미세하게 날렸다. 뻥튀기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방금 있었던 최고의 흥정 이야기를 소리 높여 자랑했다.
나는 벤치 끝에 앉아 그 모습을 보았다. 씁쓸함은 있었다. 그러나 불행의 맛은 아니었다. 내 무릎 위에 올려둔 파란 우산이 비를 한껏 받다가, 문득 내 얼굴을 비춰 주었다. 그 속의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작은 미소였지만, 내 미소였다. 사장 아저씨가 곁을 지나며 "다음엔 너도 해봐" 하고 툭 한마디를 얹고 갔다. 그 말은 야단도 위로도 아닌, 그냥 '다음'의 모양을 빌려준 말이었다.
해가 더 기울자 집 생각이 떠올랐다. 문턱을 넘기 전, 숨을 한 번 길게 골랐다. 그래도 그날은 배에 설탕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 냄새가 내 안쪽에서 아주 얇은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안 보일 만큼 얇지만, 분명히 있는 용기.
지금도 큰비가 오면, 나는 파란 비닐우산을 먼저 떠올린다. 줄 맞춰 서 있던 반짝임, 아이들의 외침, 종이봉투 속 설탕 가루, 그리고 벤치 끝에 앉아 있던 나. 그 장면은 힘들었다기보다 따뜻하다. 어른이 된 지금 돌아봐도, 그날의 나는 분명 아이였다. 빗속에서 한 자루도 못 팔았지만, 자기 차례의 반짝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던 아이. 그래서 비가 오면, 나는 먼저 미소가 난다.
11화에서 밝혀집니다. 왜 나는 스스로 파출소 문을 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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