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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대기통의 밤 - 고아원에서의 시작

📑 목차

    [자전적 소설] - 11회: 파출소로 가는 길 - 고아원 입소 결심

     

    11회: 파출소로 가는 길 - 고아원 입소 결심

    [자전적 소설] - 10회: 파란 우산의 추억 - 팔지 못한 우산※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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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대기통의 밤 - 고아원에서의 시작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그곳에서 내 복수는 다시 모양을 달리했다. 책부터. 글자부터. 아침 종이 울리면 일어나고, 배식판을 비우고, 틈만 나면 칠판을 오래 바라보자. 내 이름을 칠판 위에 갖다 놓을 날까지, 손을 먼저 들자. 누구보다 많이 묻자. '너를 힘으로 이긴다'가 아니라 '나를 공부로 세운다.' 그 문장을 나는 마음속에 조용히 적었다.
    밤이 되자, 복도의 형광등이 하나씩 꺼졌다. 천장에는 벌레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았다. 이불을 당겨 턱까지 끌어올리자, 소독약 냄새가 더 진해졌다. 눈을 감자, 파출소의 자판 소리와 호송차의 금속성 떨림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소리 위로 또 다른 소리가 겹쳤다. 종소리. 교문 옆 구령대에서 들리던, 시작을 알리는 소리.
    나는 이불 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부."
    한 글자였다. 그러나 그 한 글자가 이곳의 밤을 조금 덜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복수는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는 일을 오래 반복하는 것임을. 내 고아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고아원의 문턱을 넘던 날, 우리는 줄을 서서 상담실 앞에 섰다. 소독약 냄새와 젖은 걸레 냄새, 형광등의 백색소음이 공기를 눌렀다. 내 차례가 오자 상담원이 카드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끝 글자에서 그의 펜이 엇나갔다. 한 획이 덜했고, 소리가 틀렸다.
    "그게 아니에요. 제 이름은 ○○○. 끝에 이렇게요."


    나는 몇 번이나 말했다. 상담원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같은 틀린 글자를 또박또박 눌러 적었다. 도장이 '퍽' 하고 내려앉았다. 빨간 잉크가 번졌다. 그 순간, 내 이름은 카드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로 누가 그 틀린 이름을 부르면, 내가 먼저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아동보호소는 내가 상상한 '공부를 시켜주는 곳'과 달랐다. 먼저 '대기통'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12화: 대기통의 밤〉 장면 재현—방장, 직원, 그리고 모인 아이들 (일러스트·연출)

    일정 기간을 거기서 보낸 뒤, 1통, 2통, 3통… 십몇 통으로 흩어져 배정된다 했다. 대기통의 방은 좁았고, 그 안에 서른 명, 마흔 명씩 들어찼다. 철제 침대가 이층으로 포개져 있었고, 바닥엔 고무 대야와 닳은 슬리퍼가 줄을 섰다. 방마다 '방장'이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큰 아이, 굳은살이 박힌 손, 짧은 명령어.
    대기통 전체를 관리하는 직원이 있었고, 그의 눈빛은 마치 교도소장 같았다. 규칙은 간단했다. 말 안 들으면 기합, 말 대꾸하면 몽둥이. 체벌은 언제든 사용 가능한 문장부호처럼 방 안에 매달려 있었다.

    다음 회차 예고|〈13화: 담을 넘는 밤〉
    낮의 정문은 실패했고, 비 오는 밤에 담이 낮아진다.
    나는 어떤 신호를 기다렸고, 어디로 내려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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