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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담을 넘는 밤 - 첫 번째 탈출

📑 목차

     

    [자전적 소설] - 12회: 대기통의 밤 - 고아원에서의 시작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3회: 담을 넘는 밤 - 첫 번째 탈출

    아침엔 줄을 맞춰 세워 점호를 하고, 낮엔 허드렛일을 돌렸다. 배식판은 얇았고, 국은 희었다. 밤이면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고, 천장에서 벌레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았다. 이불은 서늘했고, 숨은 얇아졌다. 나는 잠드는 대신 생각했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 떠오른 길은 단순했다. 정문. 줄을 맞춰 운동장으로 나갈 때, 멀리 정문이 보였다. 내 자리에서 그 문까지, 눈대중으로 칠십 미터쯤. '저기로 달리면 된다.' 나는 머릿속으로 거리를 수십 번 쟀다. 맨홀 뚜껑부터 문턱까지, 나무 두 그루와 소화전 하나, 웅덩이 한 쪽의 물기까지 기억했다. 감시가 약해지는 틈을 기다렸다.
    어느 날, 구령이 흐트러진 순간이 왔다. 나는 냅다 달렸다.

    정문을 향해 달리는 아이—첫 탈출 시도 (일러스트·연출)

     

     공기가 옆으로 찢기고, 심장이 앞질러 뛰었다. "거기서, 멈춰!" 뒤에서 외침이 터졌다. 휘파람이 길게 찢어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정문을 지나 바깥 땅을 딛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다음, 손이 목덜미에 걸렸다. 금속의 삭은 냄새, 젖은 흙냄새, 숨이 뒤엉켰다. 나는 끌려 들어갔다.
    몽둥이가 날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훈계 몇 마디가 전부였다. "다시는 도망가지 마라."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실패는 실패였다. 첫 탈출은 문턱에서 끝났다.


    그 뒤로는 낮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했다. 다른 길을 찾았다. 운동장 귀퉁이 담벼락을 더듬다 보니, 한쪽 바깥땅이 내 키 정도로 낮은 지점이 있었다. 발만 제대로 딛으면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곳을 '탈출로'로 마음속에 표시했다. 밤이 답이었다.
    그 사이, 한 아이가 밤새 사라진 일이 있었다. 아침 점호에서 끊어진 이름 하나. 모두가 알았다. 도망쳤다는 걸. 이미 한두 번 탈출했다가 다시 잡혀온 아이들도 있었으니, 감시는 더 빡빡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도 밤에 나가자. 결심은 그렇게 진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을 골랐다. 비는 소리를 적당히 흐리고, 눈을 무디게 만든다.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각, 나는 조용히 이불을 걷어냈다. 발바닥으로 바닥의 차가움을 먼저 확인했다. 복도를 지날 때 형광등 아래 고인 빛을 밟지 않으려 옆으로 미끄러졌다. 숨은 아주 길고 얇게 잘랐다. 운동장에 나왔다. 빗줄기가 얼굴을 두드렸다. 어둠이 평소보다 두꺼웠다.


    귀퉁이 담에 닿았다. 손으로 벽돌의 이음새를 더듬어 발을 걸었다. 젖은 시멘트의 미끄러움이 손바닥을 스쳤다. 팔과 무릎에 힘을 모아 몸을 끌어올렸다. 바깥쪽 바닥이 내 쪽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더 들이마시고, 몸을 기울였다. 순간, 빗물과 함께 공기가 바뀌었다. 담 너머로 떨어지며 무릎이 충격을 먹었다. 통증 위로 자유의 맛이 얇게 스며들었다. 나는 일어나 달렸다. 뒤에서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삼켰다.
    밤새 걸었다. 길은 익숙했고, 낯설었다.

    다음 회차 예고|〈14화: 다시 잡혀온 날〉
    골목의 작은 친절과 대기통으로의 복귀 사이.
    나는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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