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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 - 13회: 담을 넘는 밤 - 첫 번째 탈출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4회: 다시 잡혀온 날 - 두 번째 대기통
비 냄새와 디젤 냄새, 분식집 지글거림이 멀고 가까워졌다. '종로'라는 글자가 간판에 찍히기 시작했을 때, 새벽이 왔다. 우체부 자전거의 금속 종이 한 번 울렸다. 나는 내 숨이 아직 가늘게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담 너머에서 들고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도, 신분도, 연줄도. 가진 건 오직 한 겹의 결심뿐이었다. 공부. 언젠가 내 이름의 끝획을, 내가 다시 써 넣기 위해.
담을 넘었지만, 거리는 아이에게 길을 오래 내주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나는 먹지 못했고, 씻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뛰쳐나올 때 입고 나온 회색빛 옷은 바늘땀이 굵었고, 가슴팍엔 헝겊 표식이 너덜거렸다. 사람들의 눈길은 먼저 그 표식을 보았다. 저녁이 되면 바람이 덜 드는 골목의 굴다리 밑으로 들어가 무릎과 가슴을 맞댔다. 콘크리트에서 밤새 식은 물 냄새가 올라왔고, 손바닥은 축축했다.
아이들이 지나가며 말했다. "거지다." 말의 끝에 달라붙은 비웃음은 가벼웠지만 오래 남았다. 동네 조그만 뽑기 가게 아주머니가 가끔 종이컵에 따뜻한 국을 건넸다. 가게 앞 유리 진열장에는 색이 바랜 인형 캡슐과 헐거운 스프링 완구가 줄을 섰고, 라디오에선 쉰 목소리의 유행가가 흘렀다. 아주머니는 묻지 않았다. "먹어." 한마디만 했다.

국물의 파 냄새가 순간 몸을 가렸다가 사라졌다. 그 가림막이 걷히면 나는 다시 표식 달린 아이로 돌아왔다.
신고는 금방 들어갔다. 파출소의 짧은 통화 몇 번 뒤, 흰 차가 왔다. 작은 철문, 자물쇠, 쇠좌석. 나는 다시 그 안에 앉았다. 차창 너머의 서울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내 쪽 시간은 멈춰 있었다. 바퀴가 맨홀을 넘을 때마다 허리가 툭 하고 떨렸다.
두 번째로 들어선 대기통은 더 길었다. 처음 들어온 아이들은 일주일 남짓 지나 '통'으로 빠져나가지만, 도망쳤다 돌아온 아이는 오래 묶어 두었다. 내 차례는 두 달, 아니 석 달 가까이. 방은 좁았고, 서른이 넘는 아이들이 어깨로 어깨를 밀었다. 방장이라 불리는 큰아이의 구두 뒤축은 닳아 검은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손등엔 오래 굳은살이 길쭉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줄, 구령, 복명, 침묵. 하나라도 어긋나면 오리걸음, 팔굽혀펴기, 벽 보고 무릎 굽히기, 때로는 몽둥이.
소독약 냄새가 얇게 깔린 복도를 오전 내내 걸레질했다. 고무 대야에서 떠밀려온 회색 거품이 바닥의 금을 타고 길게 뻗었다. 배식판 위의 국은 희었고, 밥은 잘 부서졌다. 밤이면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고, 천장의 얼룩이 불빛보다 더 뚜렷해졌다. 나는 천장 얼룩의 모양으로 날짜를 세었다. 개처럼 앉아 있던 시간이 지나가면, 어제와 오늘이 얼룩의 위치로만 구분됐다.
몸은 금방 초췌해졌다. 다리뼈는 얇게 솟고, 발등의 오래된 화상은 종종 가렵고 욱신거렸다.
다음 회차 예고|〈15화: 먼지 위의 글자〉
밤마다 먼지 위에 쓰던 글자, 주말의 임시 교실.
나는 무엇으로 내 이름을 되찾고 어떻게 공부를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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