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1회: 파출소로 가는 길 - 고아원 입소 결심

📑 목차

    [자전적 소설] - 10회: 파란 우산의 추억 - 팔지 못한 우산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1회: 파출소로 가는 길 - 고아원 입소 결심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끝내 결심했다. 계모에게 되갚는 길은 주먹이 아니라고. 공부하자. 제대로 배워서, 번듯하게 살아서, 그 얼굴 앞에 내 삶을 들이밀자. 그게 복수다.


    문제는 내가 이미 학교 밖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는 것. 결석이 길어지다 결국 퇴학처럼 밀려났다. 돌아갈 문이 없었다. 그때 떠올린 길이 하나 있었다. 고아원. 거기 들어가면, 그래도 공부를 시켜주지 않을까. 어린 머리로 낼 수 있는 최선의 계산이었다.
    나는 파출소로 갔다. 문을 열자 담배 냄새와 축축

    한 걸레 냄새, 먹줄처럼 눌린 발자국 냄새가 섞여 나왔다. 전화 다이얼이 돌아가는 소리, 타자기 자판이 철컥이는 소리가 얇게 겹쳤다. 책상 뒤의 경찰이 고개를 들었다.

    파출소의 전화 소리와 작은 철문—입소를 결심한 아이 (일러스트·연출)


    "왜 왔니?"
    "저… 고아원에 보내 주세요."
    그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훑었다.
    "집은? 이름은? 아버지 연락처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 모른다고 했다. 모른다고 해야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사이로 낮고 짧은 말들이 오갔다. 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겨우 걸터앉아 손바닥을 무릎 밑에 숨겼다. '고아원에 가면, 책을 주겠지. 노트를 주겠지. 내 자리에 이름을 써 주겠지.' 머릿속에서 글씨가 한 줄, 한 줄 떠올랐다. 복수의 모양이 칠판처럼 까맣게 서 있었다.


    한참 후, 파란 줄이 그어진 흰 차가 들어왔다. 문 옆에 작은 철문. 안은 쇠로 된 긴 좌석과 네모 철창뿐이었다. 자물쇠가 툭 풀리고, 문이 미는 소리로 열렸다.
    "타."
    나는 안으로 올라탔다. 눈앞에서 쇠창살이 한 겹 더 생겼다. 이미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나보다 큰 아이, 내 또래의 깡마른 아이, 구두 뒤축이 닳은 아이.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차가 움직이자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진동처럼 퍼졌다. 바퀴가 맨홀을 지나갈 때마다 몸이 들썩였다.
    창밖에 서울이 천천히 흘렀다. 포장마차의 국물 김, 공사장 모래먼지, 장맛비 뒤에 남은 물웅덩이. 모든 게 멀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좌석의 쇠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차갑고 매끈했다. 그 위에 내 손금이 얇게 눌렸다.


    차가 멈췄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라는 글자가 보였다. 내가 상상하던 고아원의 얼굴은 아니었다. 높은 담, 삭은 페인트, 휘어진 철문. 안으로 들어가자 소독약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복도는 회색이었고, 형광등은 낮게 윙 하고 울었다. 두 줄로 세우라는 목소리. 이름을 묻는 목소리. 나는 또 모른다고 했다. 이름은 알았지만, 그날은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내 과거가 딸려오지 않게.
    작은 방으로 안내됐다. 철제 침대가 두 겹으로 포개져 있었다. 위층 침대 난간에 얇은 이불이 접혀 있었다. 바닥에는 고무 대야와 닳은 슬리퍼가 줄을 섰다. 창문 틈으로 먼지가 얇게 들어왔다. 멀리서 아이 울음이 한 번 끊겼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다음 회차 예고|〈12화: 대기통의 밤〉
    카드 위 틀린 이름, 문 위 대기통.
    첫 밤, 나는 어떤 규칙과 마주하게 될까?
    다음 회차 읽기목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