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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소년의 집 - 정식 국민학교 설립

📑 목차

    [자전적 소설] - 15회: 먼지 위의 글자 - 대기통에서의 공부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6회: 소년의 집 - 정식 국민학교 설립

    우리는 그 소리를 따라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 애가 부는 동안은, 이곳의 규칙과 구령이 잠깐 멀어졌다. 지금도 그 시설에서 내가 또렷이 떠올릴 수 있는 아이는 그 친구뿐이다.


    대략 1년쯤 지났을 때, 마지막 변화가 왔다. 아동보호소라는 이름은 완전히 내려지고, **'소년의 집 국민학교'**가 공식 문서에 올라갔다. 남을 사람과 나갈 사람을 정하는 안내가 있었다. 남는 아이들은 이 학교에서 정식 과정으로 배우고, 일정 학년을 마치면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직업을 빨리 익히고 싶은 아이들은 외부 직업훈련소로 간다.


    운동장 모서리에서 그 친구는 짧게 말했다. "난 기술 배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리의 끝 음이 약간 떨렸다. 헤어질 때 그는 내 어깨를 툭 쳤다. "너는 공부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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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았다. 새 교과서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종이 가루가 얇게 일었다. 받아쓰기 때는 손에 땀이 맺혔고, 산수 시간엔 분수의 선이 공책 줄과 딱 맞아떨어지도록 자를 바짝 대고 그었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표가 접힌 채 배부되었다. 이름, 학년, 과목, 점수. 종이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맨손이 아니었다. 점수라는 숫자, 출석이라는 적색 표시, 그리고 '성실'이라는 평정 한 줄이 내 편을 들기 시작했다.


    외국 신부님이 주도해 간판이 바뀌고, 그 자리 위에 새 건물이 올라갔다. 갓 부은 시멘트 냄새와 페인트의 매캐한 단내, 새로 깎은 나무 책상에서 나는 송진 향이 아침마다 복도에 퍼졌다. 그리고 공지 한 줄. 정식 인가 국민학교 설립. 더는 임시 수업도, 자원봉사 선생도 아니었다. 교육청에서 내려온 인가 도장이 찍힌, 졸업장이 나오는 학교. 그 말이 운동장 흙에 또렷한 선을 그었다. '여기서 끝까지 버티면, 내가 서류 한 장으로 증명되는 사람으로 자란다.


    종은 진짜 학교처럼 울렸다. 1교시, 2교시, 점심, 5교시, 6교시.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고, 울리면 복도로 나갔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중간에 빠져나가는 일은 없었다. 출석부에 빨간 펜으로 결석과 지각이 기록되었다. 앞자리엔 산수와 국어의 진도가 칠판에 날짜와 함께 적혔다. 분필이 칠판을 긁을 때 나는 소리가 또렷했다. 선생님은 교과서 페이지를 넘겼고, 우리는 교과서의 냄새를 한 장씩 들이마셨다.


    교실은 허술하지 않았다. 초록 칠판, 광택을 낸 긴 책상, 높낮이가 맞춰진 의자, 벽의 학급 표어. "정직, 근면, 배려." 창틀의 페인트는 벗겨지지 않았고, 형광등은 일정하게 빛을 냈다. 복도 끝에는 보건실, 그 옆엔 교무실이 있었고, 교무실 문 안쪽에는 시간표가 줄 맞춰 붙어 있었다. 아침 조회에서 선생님은 이름을 불렀고, 나는 상담실에서 바뀌어 버린 그 끝 글자를 또렷하게 바로잡아 말했다. 선생님은 한 번 더 물어 확인하더니, 출석부를 고쳤다.

     

    다음 회차 예고|〈16화: 소년의 집 – 정식 국민학교 설립〉
    간판이 바뀌고 종이 울린 날, 나는 남기로 했다.
    한 장의 인가 도장은 내 내일을 어디까지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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