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7회: 엄마 수녀님들 - 소년의 집에서의 새 삶

📑 목차

    [자전적 소설] - 16회: 소년의 집 - 정식 국민학교 설립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7회: 엄마 수녀님들 - 소년의 집에서의 새 삶
    공백제외: 2,013자
    그날 저녁, 나는 내 이름을 칠판 가장자리에 한 번 더 써 보았다. 마지막 획이 정확히 내려앉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한 번은 교장 신부님이 새로 지은 본관 앞을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소매를 부풀리고, 나무 그림자가 계단에 격자로 떨어졌다. 그가 종을 울렸다.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알려 주는 소리. 누군가 우리 시간을 '제대로' 취급한다는 증거였다.

    17회_본관_종소리.jpg

     나는 그 소리를 가슴에 접어 넣었다. 그날 해는 황금빛이었고, 내 그림자는 책상 길이만큼 곧고 길게 뻗었다.
    밤이면 기숙사에서 숙제를 했다. 지우개 부스러기가 하얗게 모이면, 종이 모서리에 톡 털어냈다. 그 작은 동작이 내 안의 낡은 먼지를 함께 털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이제 '복수'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상상이 아니라, 내 이름과 배움으로 세워지는 집의 설계도였다. 정식 인가와 졸업장. 그 단어들이 내게는 문패 같았다. 언젠가 문패를 달 집이 있을 거라는 상상, 그 집 앞에서 내 이름을 또렷이 부를 수 있으리라는 약속.


    소년의 집으로 간 날, 간판이 먼저 바뀌었다. 낡은 철문 위에 새로 매단 흰 팻말. 검은 글씨로 '소년의 집'. 본관 바닥엔 막 왁스를 먹인 냄새가 났고, 복도 창틀의 페인트는 반들거렸다. 우리는 줄지어 기숙사 앞에 섰다. 각 침방엔 가톨릭 성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알로이시오 반, 바오로 반, 그 옆엔 루카 반. 한 방에 스무 명에서 서른 명, 2층 침대가 규칙처럼 맞물려 서 있었다. 방 문이 열릴 때마다 묵주가 스치는 잔 소리와 빨래 비누의 냄새가 엷게 흘렀다.


    수녀님이 들어왔다. 검은 수녀복 자락이 바닥을 스치고, 은은한 풀기 냄새가 팔소매에서 났다. "앞으로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자." 수녀님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엄마"라고 불렀다. 이상하게도 그 호칭은 입에서 쉽게 굴러 나왔다. 엄마가 방마다 있었다. 저녁이면 '엄마'가 머리맡을 돌아다녔다. "이불 잘 덮었지? 내일 체육하니 운동화 끈 확인." 목소리는 낮았고, 확인은 꼼꼼했다. 그 방식이 우리를 천천히 묶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으로.


    학력은 나이에 맞추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간단한 시험을 치렀고, 나는 여섯 학년의 나이로 4학년에 배정되었다. 배정표에 내 이름이 다시 한 번 정확히 적혔다. 상담실에서 틀렸던 마지막 획이 이번에는 또렷했다. 분필이 칠판에서 끝을 훅 눌러 내릴 때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숨을 한번 길게 들이마셨다. 내 이름이 내 자리에 앉았다는 느낌.
    수업은 진짜였다. 산수 시간엔 분수의 선을 자에 딱 맞게 그었고, 국어 시간엔 받아쓰기를 했다. 틀린 글자 옆에는 작은 빨간 동그라미가 생겼다.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마음은 오래 방황하던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다음 회차 예고|〈18화: 합주부와 바이올린〉
    송진 냄새가 번지고, 성가의 첫 음이 열린다.
    나는 왜 바이올린을 택했고, 그 떨림은 어디까지 나를 데려갈까?
    다음 회차 읽기목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