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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

18회: 합주부와 바이올린 - 운명의 악기

by realstorybook 2025. 11. 5.

[자전적 소설] - 17회: 엄마 수녀님들 - 소년의 집에서의 새 삶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8회: 합주부와 바이올린 - 운명의 악기

창밖으로 운동장의 흙먼지가 일면, 눈이 먼저 그 먼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분명히 칠판을 가리키고 있어도, 내 귀는 가끔 예전의 소음을 먼저 떠올렸다. 호송차의 금속 떨림, 대기통의 구령, 비에 젖은 담벼락 냄새. 그럴 때면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꼭 잡았다. 지금은 여기, 라고 손끝으로 현재를 붙들었다.


밤이면 '엄마'는 우리를 한 줄로 세워 기도를 짧게 이끌고, 숙제할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정확히 나눴다. 기숙사 복도 끝 탁자 위에는 연필깎이가 있었고, 깎인 심이 종지에 고르게 쌓였다. 연필을 새로 깎을 때마다 나무결의 향이 올라와 머리를 맑게 했다. 나는 받아쓰기 공책에 지우개 부스러기를 하얗게 모았다가, 종이 모서리에 '툭' 털어냈다.
4학년 2학기였을 거다. 어느 날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다.


"각자 특별활동을 고른다. 미술부, 합주부, 기타… 오늘 안에 결정."
왜인지 나는 합주부에 손이 갔다. 문을 열자마자 코에 먼저 닿은 건 송진 냄새였다. 아이들이 이마에 흘린 땀과 나무 활대, 오래된 피아노의 나무 결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합주부는 클래식 악기를 가르쳤다. 바이올린, 클라리넷, 플루트, 그리고 학교 피아노. 바이올린 선생님은 현악 전공은 아니었다.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고, 손끝보다 머리로 우리를 이끌었다. 활을 쥐는 법, 개방현을 긋는 각도, 음계가 쌓이는 원리. 연주는 못 보여줘도, 우리는 악보 위에서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삑삑대던 첫날의 소리들이 일주일, 한 달을 지나며 한 줄짜리 멜로디가 되었다.

18회_미사반주_첫음.jpg

소년의 집은 카톨릭 시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본관 강당에서 미사가 열렸다. 양초의 왁스 냄새와 향로의 연기, 성가 번호판의 나무 깃, 종소리가 공기를 둥글게 울렸다. 그때부터 합주부의 자리가 생겼다. 우리는 강단 한쪽에 반원으로 섰고, 아이들이 성가를 부르면 우리 연주가 그 위를 받쳤다. 처음 '사도신경'이 끝난 뒤, 내 활이 성가 첫 음에 닿았을 때. 가슴이 먼저 떨리고 손이 따라 떨렸다. 그런데 떨림이 끝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 떨림 덕분에 소리가 살아 있었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음악에 빠져들었다. 어려운 악기라고 겁먹을 틈보다, 매일 조금이라도 소리를 더 맑게 만드는 일에 마음이 갔다. 밤이면 송진가루가 손등에 하얗게 묻었고, 첫째 손가락 마디가 단단해졌다.


공부에 대한 마음도 식지 않았다. 4학년, 5학년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6학년에 올라가자 확실해졌다. "이번엔 해 보자." 일요일에도 교실로 내려와 공부했다. 창문을 반쯤 열면 운동장 흙냄새가 들어왔고, 종례도 없는 조용한 교실에 우리 둘의 연필 긁는 소리만 길게 이어졌다. 등사 잉크 냄새가 배어 있는 예습 프린트, 받아쓰기 공책의 매끈한 표지, 분수 문제를 풀 때 자를 대는 바스락. 그 모든 촉감이 내 편이었다.

다음 회차 예고|〈19화: 공부와 음악 사이〉
접힌 성적표와 성가의 첫 음 사이.
나는 어떻게 두 개의 줄 위에서 균형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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