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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

19회: 공부와 음악 사이 - 6학년의 균형

by realstorybook 2025. 11. 5.

[자전적 소설] - 18회: 합주부와 바이올린 - 운명의 악기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9회: 공부와 음악 사이 - 6학년의 균형


그러다 성적표가 나온 날, 50명 중 3-4등. 종이가 반으로 접힌 채 교탁에서 내 손으로 건너올 때, 종이의 모서리가 또렷하게 손바닥을 찔렀다. "할 수 있다"는 말보다 더 설득력 있는 냉기였다.


합주부와 공부 사이에서 나는 균형을 배웠다. 늦은 오후, 강당에서 개방현을 천천히 긋고 나면, 밤 자습 때 손목이 이상하게도 더 단단해졌다. 바이올린의 네 줄과 공책의 네 줄 칸이 겹쳐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활을 수평으로 유지하듯, 마음도 수평으로 맞췄다. 한쪽으로 기울면 소리가 탁해진다. 공부도 그랬다.


그 무렵, 함께 공부하던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셌다. 큰 어깨가 늘 책상 위로 살짝 숙여져 있었고, 시험 전날이면 "한 번만 더"를 먼저 말하던 아이. 시설 안이라고 해서 모두 착한 건 아니었다. 조금 힘이 세고 조금 더 오래 머문 아이들 중에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며 자리를 세우려는 녀석들이 있었다.


어느 저녁, 내 책을 빼앗아 들고 툭툭 치며 시비를 걸던 아이가 내 앞으로 걸어왔을 때, 그 친구가 조용히 일어났다.
"그만해."

 

목소리는 낮았고, 눈빛은 단단했다. 더 큰 소리가 필요 없었다. 녀석은 코웃음을 치더니 물러났다. 그날 밤, 나는 그 친구의 연필을 깎아 건넸다. "고마워." 그 친구는 말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지금도 문득 보고 싶지만, 찾아갈 실마리가 없다.

 

그 아이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강당 한쪽에서, 혹은 교실 맨 뒤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있던, 6학년의 내 얼굴을.
미사는 매주 돌아왔다. "성가 ○○번" 숫자가 바뀌면, 우리는 조용히 조율을 했다. 피아노가 '라'를 눌러 주면, 바이올린이 그 음을 길게 붙잡았다. 그 한 음을 맞추는 동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떠돌 던 공포, 흔들리던 기억, 틀렸던 이름의 마지막 획까지도. 음악은 내 마음의 출석을 매번 정확히 불러 주는 느낌이었다.

 

18회_미사반주_첫음.jpg

6학년 겨울, 강당 난방이 더딜 때도 있었다. 숨이 하얗게 보이는 강당에서 우리는 장갑을 벗고 활을 쥐었다. 손끝이 얼어도, 성가가 시작되면 소리가 먼저 온기를 만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강당 뒤편에서 잠깐 연습을 더 했다. 활털이 현을 타고 지나가며 내는 미세한 마찰음, "한 번만 더"를 눌러 말하는 선생님의 습관, 피아노 뚜껑이 닫히며 나는 무거운 '쿵' 소리. 그런 소리들이 내 하루를 정리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두 개의 줄 위를 걸었다. 하나는 공부의 선, 다른 하나는 음악의 선. 둘 다 팽팽했다. 어느 날은 공부가 끊어질 것 같았고, 어느 날은 음악이 삐걱거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둘은 서로를 지탱했다. 바이올린의 활이 수평을 되찾으면, 내 마음도 문제지 앞에서 수평을 회복했다. 성적표의 숫자가 나에게 용기를 주면, 활 끝도 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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