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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

20회: 고등학교와 콩쿠르 - 첫 무대

by realstorybook 2025. 11. 5.

[자전적 소설] - 19회: 공부와 음악 사이 - 6학년의 균형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0회: 고등학교와 콩쿠르 - 첫 무대

방과 후 특활 시간, 우리는 합주실로 모였다. 문을 열자 송진 냄새와 광을 낸 마룻바닥의 나무향, 악보지의 잉크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담당 선생님이 말없이 우리를 다섯 명씩 일렬로 세우더니, 한 사람씩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손바닥의 살, 손가락 길이, 마디의 각도를 훑어보던 선생님이 빠르게 배정을 불렀다.


"너는 바이올린, 너는 첼로… 너는, 첼로."
내 차례에 '첼로'가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바이올린이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내 손을 다시 들어 보았다.
"이 손은 첼로에 더 어울려."
말투는 단단했지만, 나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하겠습니다."
짧은 정적 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바이올린."
그날 파트가 정해졌다. 

 

턱받침에 악기를 올리는 각도, 엄지의 위치, 활을 쥘 때 손가락의 힘을 어디까지 빼야 하는지. 온몸의 작은 근육들을 새로 배치하듯 자세를 고쳤다. 그다음은 개방현. A현부터 길게, 아주 곧게. 라, 라, 라. 음이 흔들리면 활끝이 들렸다는 뜻, 소리가 거칠면 손목이 굳었다는 뜻.
교재는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 1권. 서울에서 하던 습관 덕인지 초반 곡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를 진짜 멈춰 세운 건 교본이 아니라 선생님의 시범 연주였다. 선생님은 활을 들고 아무 설명 없이 두세 마디를 그었다. 첫 음이 합주실 공기를 바꾸는 걸, 내 피부로 느꼈다. 소리는 맑고 깊

었고, 끝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비브라토가 빛처럼 음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

20회_시범연주_공기가바뀐순간.jpg

눈을 크게 뜬 채, 나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그 손을 따라갔다. 설명보다 소리가 먼저 이해를 만들었다.
3학년이 되던 봄, 연습이 끝나고 활털에 묻은 송진을 툭툭 털고 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올해, 콩쿠르 한 번 나가 보자."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비껴 뛰었다. 우리 합주부 안에선 내가 앞서는 편이었지만, 바깥 아이들과 겨룬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선생님 입에서 "나가자"가 나왔으니, 내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날로 레퍼토리가 정해졌다.
1차: 헨델 바이올린 소나타 4번 1, 2악장.
2차: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악장.
콩쿠르 전주, 내 연습은 다시 '분리'로 돌아갔다. 활만, 왼손만, 연결. 어떤 날은 전체 템포로 무너졌고, 어떤 날은 느리게 붙잡은 한 마디가 뜻밖의 힘을 냈다. 밤이면 기숙사 복도 끝에서 손가락만으로 운지를 외웠다. 1지, 2지, 3지, 4지. 헨델의 한 문장 끝에서 모차르트 첫 주제로 넘어가는 길이 손끝에서 미리 그려졌다.

계속해서 나머지 원고를 같은 방식으로 분할하겠습니다. 전체 약 30회 분량으로 구성됩니다. 다음 회차를 이어서 작성할까요?재시도버다음 회차를 이어서 작성해줘다음 회차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작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사용자가 다음 회차를 이어서 작성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0회까지 작성했으므로 21회부터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각 회차마다 공백 제외 약 2000자 내외로 맞추고, 자연스러운 흐름과 소제목을 유지하면서 원문의 내용과 문체를 그대로 살려야 합니다.

 

다음 회차 예고|〈21회: 첫 콩쿠르 – 3등의 의미〉
교육위 현수막 아래, A음 튜닝과 떨림 사이.
나는 첫 무대에서 무엇을 배우고, 3등이라는 숫자에서 어떤 약속을 발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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