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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삶 & 에세이31

13회: 담을 넘는 밤 - 첫 번째 탈출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3회: 담을 넘는 밤 - 첫 번째 탈출 아침엔 줄을 맞춰 세워 점호를 하고, 낮엔 허드렛일을 돌렸다. 배식판은 얇았고, 국은 희었다. 밤이면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고, 천장에서 벌레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았다. 이불은 서늘했고, 숨은 얇아졌다. 나는 잠드는 대신 생각했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 떠오른 길은 단순했다. 정문. 줄을 맞춰 운동장으로 나갈 때, 멀리 정문이 보였다. 내 자리에서 그 문까지, 눈대중으로 칠십 미터쯤. '저기로 달리면 된다.' 나는 머릿속으로 거리를 수십 번 쟀다. 맨홀 뚜.. 2025. 11. 4.
12회: 대기통의 밤 - 고아원에서의 시작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12회: 대기통의 밤 - 고아원에서의 시작※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그곳에서 내 복수는 다시 모양을 달리했다. 책부터. 글자부터. 아침 종이 울리면 일어나고, 배식판을 비우고, 틈만 나면 칠판을 오래 바라보자. 내 이름을 칠판 위에 갖다 놓을 날까지, 손을 먼저 들자. 누구보다 많이 묻자. '너를 힘으로 이긴다'가 아니라 '나를 공부로 세운다.' 그 문장을 나는 마음속에 조용히 적었다. 밤이 되자, 복도의 형광등이 하나씩 꺼졌다. 천장에는 벌레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았다. 이불을 당겨 턱까지 끌어올리자, 소독약 냄새가 더 진해졌다. 눈을 감자.. 2025. 11. 3.
11회: 예고 입시, 무모한 도전 - 음악 고등학교 입시 준비 과정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1회: 예고 입시, 무모한 도전 - 음악 고등학교 입시 준비 과정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끝내 결심했다. 계모에게 되갚는 길은 주먹이 아니라고. 공부하자. 제대로 배워서, 번듯하게 살아서, 그 얼굴 앞에 내 삶을 들이밀자. 그게 복수다.문제는 내가 이미 학교 밖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는 것. 결석이 길어지다 결국 퇴학처럼 밀려났다. 돌아갈 문이 없었다. 그때 떠올린 길이 하나 있었다. 고아원. 거기 들어가면, 그래도 공부를 시켜주지 않을까. 어린 머리로 낼 수 있는 최선의 계산이었다. 나는 파출소로 갔다. 문을 .. 2025. 11. 3.
10회: 음악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 예술가를 꿈꾸게 된 이유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0회: 음악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 예술가를 꿈꾸게 된 이유 동네에는 만화책을 빌려주고 과자와 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비가 오면 가게 앞에 파란 비닐우산이 줄 맞춰 섰다. 젖은 플라스틱 냄새와 버터 크림 냄새가 섞여 골목으로 흘렀다. 어느 장대비 내리던 날, 사장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산 팔래? 한 자루 팔면 얼마씩 줄게."아이들은 환호했다. 파란 우산 다발이 어깨마다 걸렸다. 누군가는 "우산이요, 우산이요!"를 높게 외쳤고, 누군가는 사람에게 바짝 다가가 "하나만 사주세요" 하고 사정했다. 나는.. 2025. 11. 3.
9회: "너는 재능이 있어" - 자존감을 회복시켜준 첫 칭찬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9회: "너는 재능이 있어" - 자존감을 회복시켜준 첫 칭찬 문 앞에서 숨을 골랐다. 두 번, 세 번. 노크를 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문이 열렸다. 엄마가 서 있었다. 냄새로, 눈빛의 모양으로, 웃을 때 입꼬리의 각도로 나는 알아봤다. 그러나 그 얼굴엔 오래된 어색함이 먼저 떠올랐다. "들어오너라." 그 말의 온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밥이 나왔다.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식도가 놀라 몇 번이고 기침을 뱉었다. 물을 마셨다. 물이 배로 떨어질 때, 내 귀에만 들리는 작고 깊은 소리가 났다. 엄마는 조용했다... 2025. 11. 2.
8회: 멍든 손으로 잡은 활대 -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의 힘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8회: 멍든 손으로 잡은 활대 -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의 힘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친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건 많지 않았다. 냄새 한 줌, 손의 온도, 웃을 때 입꼬리의 모양 같은 것들. 그 기억들이 골목의 바람처럼 어느 날 불쑥 내 곁을 스쳐 갔다. 그 바람이 지나가자, 나는 알았다. 내가 도망친 건 집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던 자리, 그 자리로부터도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을.초등학교 3학년, 결석이 습관이 되어가던 때였다. 육성회비 봉투가 돌던 월초마다 나는 담벼락에 붙어.. 2025.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