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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삶 & 에세이31

25회: 검정고시 합격 - 새로운 시작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5회: 검정고시 합격 - 새로운 시작 버스 안에서는 노트를 외웠고, 집에 돌아오면 활을 들었다. 종이 울리는 삶에서 벗어났지만, 나는 나만의 종을 만들었다. 오전 두 시간, 국어와 수학. 오후 한 시간, 영어. 저녁, 활. 시험 날, 교실에 퍼진 잉크 냄새와 연필심 냄새가 이상하게도 합주실의 송진 냄새를 닮아 있었다. 나는 책상 모서리에 손을 붙이고 문제지를 넘겼다. 끝날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며칠 후,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았을 때 손끝이 먼저 떨렸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 합격. 계단을 .. 2025. 11. 7.
24회: 탈출 - 아버지의 작업실로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4회: 탈출 - 아버지의 작업실로 "그분 작업실이 어딘지 아세요?" 수소문이 길을 냈다.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책과 공책 몇 권, 사인펜과 지우개, 그리고… 바이올린 한 대.그 밤, 기숙사 소등 후 복도가 잠잠해졌을 때, 나는 케이스를 검은 담요로 감쌌다. 문고리를 감싸 잡아 소리가 나지 않게 돌리고, 발꿈치를 들었다. 계단의 네 번째 단에서 삐걱이 가장 컸고, 다섯 번째는 조용했다. 연습 때부터 알아 둔 사실. 정문 옆 경비실의 불빛은 노랗게 깜박였다. 수녀님들의 묵주 소리가 멀리서 한 번 흔들렸다가 잦아들었.. 2025. 11. 7.
23회: KBS 교향악단 광고 - 운명의 게시판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3회: KBS 교향악단 광고 - 운명의 게시판 그리고 나는 고2로 들어섰다. 새로운 곡과 더 넓은 무대, 더 빽빽한 도면들. 여전히 연습 시간은 빡빡했고, 단체생활의 리듬은 엄격했다. 그래도 알았다. 하루 20분의 새벽과, 저녁 전 90분의 집중.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내 소리를 만든다는 것을. 그 소리로, 나는 다음 문을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생활관 복도 끝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액자 유리 안, 신문 하단 3분의 1을 통째로 차지한 검은 활자들이 먼저 눈에 박혔다. "국립 교향악단 KB.. 2025. 11. 6.
22회: 빡빡한 시간표 - 고등학교 입학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2회: 빡빡한 시간표 - 고등학교 입학 그래도 나는 밤을 최대한 쪼개 썼다. 복도 창가에 등을 대고 서서, 연필을 활처럼 쥐고 보잉의 각도를 따라 그렸다. 1지, 2지, 3지… 손가락 운지는 책상 모서리에서 조용히 오갔다. 형광등의 백색 소음, 먼지의 느린 춤, 멀리서 들려오는 경비실 벽시계의 '째깍'. 그 틈마다 나는 악보의 쉼표를 떠올렸다. 소리 없는 연습.얼마 뒤, '엄마' 수녀님이 내 눈 밑 그림자를 보셨는지 작은 허락을 내주셨다. "아침 기상 종 전에 20분, 합주실 문 열어 줄게." 그 말은 문 하나를 .. 2025. 11. 6.
21회: 첫 콩쿠르 - 3등의 의미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1회: 첫 콩쿠르 - 3등의 의미 대회 당일, 교육위원회 주최라는 현수막 아래로 아이들이 모였다. 대기실은 악보 넘기는 소리와 A음 튜닝이 얇게 뒤엉켜 있었다. 누군가는 빠른 패시지를 질주했고, 누군가는 느린 음 하나를 오래 붙들었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잘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한참 더 단단했다. 순간, 가슴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이제 겨우 2년 차인데….' 그때 선생님의 짧은 말이 떠올랐다. "좋은 소리." 나는 속으로 한 줄 더 보탰다. '올해는 배운다. 내년엔 이긴다.' 그 생각이 이.. 2025. 11. 6.
20회: 고등학교와 콩쿠르 - 첫 무대 ← 이전화 다음화 →">← 이전화 다음화 → ※ 이 글에는 과거의 가정폭력/학대 경험에 대한 간접적 묘사가 포함됩니다. 노골적·상세한 표현은 지양합니다. 불편하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20회: 고등학교와 콩쿠르 - 첫 무대방과 후 특활 시간, 우리는 합주실로 모였다. 문을 열자 송진 냄새와 광을 낸 마룻바닥의 나무향, 악보지의 잉크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담당 선생님이 말없이 우리를 다섯 명씩 일렬로 세우더니, 한 사람씩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손바닥의 살, 손가락 길이, 마디의 각도를 훑어보던 선생님이 빠르게 배정을 불렀다."너는 바이올린, 너는 첼로… 너는, 첼로." 내 차례에 '첼로'가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바이올린이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내 손을 다시 들어 보았다.. 2025. 11. 5.